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이청준의 문장이 된 풍경 속을 걷다

by 준미니 2025. 5. 19.

장흥 회진면, 작가의 고향을 따라 걷는 문학 기행

이청준의 문장이 된 풍경 속을 걷다라는 주제로 글을 시작합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마을
소설가 이청준, 한국 현대문학의 거장이 남긴 수많은 작품들엔
늘 고향의 바람과 바다, 골목과 사람이 함께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 고향,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은 이제 ‘문학 기행지’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이청준의 문장이 된 풍경 속을 걷다
이청준의 문장이 된 풍경 속을 걷다

바다와 사람, 그리고 기억이 엮인 회진면


장흥군 회진면은 남해와 맞닿은 조용한 바닷가 마을입니다.
푸른 바다와 낮은 산, 작은 포구와 오래된 마을길이 뒤섞여 있는 이곳은
관광지로서 화려하진 않지만, 고요한 아름다움이 깊게 스며 있는 장소입니다.

이 마을이 특별한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이청준이라는 작가가 태어나고 자라며
수많은 작품의 배경이 된 문학적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대표작 『눈길』, 『선학동 나그네』, 『축제』 등에서
회진면은 이름은 다르게 불리지만, 늘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눈 덮인 고샅길, 굽이진 뒷산길, 마을 어귀의 방앗간,
그리고 바다를 마주한 작은 초가집들—
그 모든 것이 작가의 기억 속 풍경이며,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이청준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회진면은
단지 한 작가의 고향이 아닌, 한국 문학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가는 문이 됩니다.
작가가 본 풍경, 듣던 소리, 마주한 얼굴들을
길을 따라 걸으며 마치 ‘간접적으로라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인 셈이죠.

 

‘선학동 나그네’의 골목을 따라 걷다


회진면 문학기행의 중심은 선학동 마을과 이청준 생가입니다.
‘선학동 나그네’는 바로 이 마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며,
그 이야기 속 화자인 음악평론가가 길을 따라 내려와 마을 사람을 만나는 장면은
실제로 지금도 걸을 수 있는 선학동 골목길에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이청준 생가는 복원되어 문학관 겸 기념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그 앞에는 작가의 흉상과 대표작 문구가 새겨진 돌비석들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작가의 문장 속 ‘고향의 풍경’과 겹쳐집니다.
특히나 바닷가 절벽 쪽으로 이어지는 ‘선학동 문학 산책길’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처럼 정돈되어 있어, 걷기만 해도 감성이 채워지는 코스입니다.

걷다 보면 작품의 한 구절이 벽에 새겨져 있기도 하고,
어느 순간은 이청준의 내면 풍경이
자신의 것처럼 느껴질 만큼 몰입하게 되는 시간도 찾아옵니다.

예를 들어, 『눈길』에서 “그날 어머니는 내게 삶의 무게를 짊어지게 했다”는 문장을 떠올리며
진흙이 묻은 좁은 시골길을 걸을 때면,
그저 문장으로만 존재하던 이야기가 ‘현실의 온도’를 가지게 되는 경험이 됩니다.

 

문학은 끝났지만 이야기는 남았다


이청준은 2008년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작품 속 인물과 풍경, 대사와 침묵은
회진면이라는 땅 위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회진면 주민들 중에는 작가와 실제 인연을 가진 사람도 있고,
그의 가족과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을 간직한 어르신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을 자체가 점점 ‘문학을 품은 장소’로 변모하며,
해마다 작가를 기리는 이청준 문학제가 열리고,
문학 해설 프로그램이나 기행 낭독회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은 단순히 작가를 기리는 추모가 아니라,
‘이야기를 품은 장소’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회진면은 단지 이청준 한 사람의 고향이 아니라,
그의 문장으로 인해 우리 모두의 이야기 속 공간이 된 것이죠.

여행으로 이곳을 찾는 이들은 어떤 이는 바다의 고요함에 매료되고,
어떤 이는 좁은 마을길에서 어머니의 흔적을 떠올립니다.
누구에게나 이청준의 문장은 다르게 읽히지만,
그 문장의 흔적을 직접 밟으며 걷는다는 경험은 공통적 감동을 선사합니다.

 

마무리하며 – 문장 너머의 고향을 만나다
장흥 회진면은 크지도, 특별한 볼거리가 많은 관광지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청준이 남긴 문장을 통해 우리는
그 마을의 바다, 돌담, 흙길,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고 공감하게 됩니다.

그의 글을 읽고, 그 장소를 걸으며
‘문학이란 결국, 사람과 장소를 잇는 다리’라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움과 침묵, 가족과 고통, 그리고 삶과 죽음에 이르는 모든 이야기들이
바로 이 조용한 마을의 풍경과 함께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언젠가 책에서 만난 문장 속으로,
이번엔 발걸음을 들여보세요.
그곳은 단어보다 더 진한 감정이 흐르는, 진짜 이야기의 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