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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책 너머에도 사람이 산다

by 준미니 2025. 5. 18.

강원도 고성은 지도 위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한 우리 땅입니다. 이번에는 철책 너머에도 사람이 산다는 주제로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만난 분단과 삶의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평화로운 해안도시엔, 끝나지 않은 전쟁의 상처가 여전히 일상을 감싸고 있습니다.
분단의 현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살아내는 마을, 고성으로 떠나는 조용한 여행을 시작합니다.

철책 너머에도 사람이 산다
철책 너머에도 사람이 산다

철책과 바다가 공존하는 땅 – 고성의 지리적 경계


강원도 고성은 대한민국 최북단, 동해안 끝자락에 자리한 마을입니다.
북한과의 접경지대인 이곳은 ‘DMZ(비무장지대)’와 맞닿아 있어, 누구보다 분단의 현실을 가까이에서 체감하는 곳이기도 하죠.

‘통일전망대’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이곳의 정체성을 설명합니다.
여기선 맑은 날이면 망원경 없이도 북측 마을과 금강산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옵니다. 같은 하늘 아래, 고작 몇 킬로미터 너머에 누군가는 여전히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경계는 철조망 하나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 철책은 육안으로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길게 이어집니다.
바다 위로 햇살이 부서지고, 철책 너머로 갈매기들이 날아드는 풍경은 어딘가 모르게 이질적입니다.
분단은 흔히 멀리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곳 고성에서는 ‘일상 그 자체’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철책이야말로 고성 사람들의 삶을 지켜주는 동시에 막아서는 장벽입니다.
그리고 그 안쪽에는 여전히 웃고, 숨 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통일전망대에서 마주한 ‘그 너머의 풍경’


고성 통일전망대는 군사보호구역에 위치해 있어, 민간인 출입을 위해 신분증 확인과 출입증 발급이 필요합니다.
이 절차를 거치고 전망대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동해와 그 위를 따라 이어진 철책선입니다.

전망대의 관람 공간에서는 북측 지역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망원경을 통해 보면, 북한의 해안 마을과 산맥, 군사 초소까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깝고도 먼 그곳을 바라보는 순간, 이 땅에 흐르는 긴장감과 평화에 대한 간절함이 교차합니다.

전망대 내부에는 분단의 역사, 6.25 전쟁, 이산가족의 삶과 관련된 전시물도 함께 구성되어 있어
단순한 풍경 감상이 아닌 ‘생각하는 장소’로 작동합니다.

그곳에서 만난 한 노인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저기 보이는 마을이 내가 태어난 곳이야. 지금은 갈 수 없어도, 매일 바라본다네.”
그 말 한마디에, 고성 통일전망대는 단순한 관람지가 아닌, 삶과 기억이 이어지는 장소로 느껴졌습니다.

 

철책 안쪽의 사람들 – 고성 주민들의 삶


고성에 사는 주민들에게 분단은 거대한 이념보다도, 일상의 일부입니다.
모든 출입이 통제되는 민간인통제구역 안에서의 삶은 타 지역과는 많이 다릅니다.
해 뜨면 초소에서 마을을 순찰하고, 밤이 되면 출입이 제한되는 곳. 그것이 그들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분단을 두려움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대신 그것을 ‘살아내야 하는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도 소박한 일상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어촌 마을에선 여전히 새벽이면 배가 떠나고, 저녁이면 잡은 생선으로 식탁이 차려집니다.
농부는 밭에서 농사를 짓고, 아이들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찹니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여긴 철책 1km 안쪽입니다.

그들에게 ‘통일’은 이상보다는 ‘가족과 밥을 함께 먹을 수 있는 날’을 의미합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말해주던 북쪽 이야기, 이름도 모르는 친척의 사진.
그리움은 세대를 이어 조용히 내려오고, 삶은 그 그리움을 끌어안고 계속됩니다.

분단의 상처는 이곳에도 분명히 있지만, 그 안엔 따뜻함도 존재합니다.
고성 주민들의 눈빛과 말투, 그리고 땅을 일구는 손길 속엔
어쩌면 ‘진짜 평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힌트가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마무리하며 – ‘분단의 풍경’에서 ‘삶의 이야기’로
고성 통일전망대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닙니다.
이곳은 분단의 실체를 마주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장소입니다.

철책 너머에도 사람이 살고, 그들도 우리와 같은 바람을 품고 있다는 사실.
그 단순한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여행은 어쩌면 그저 풍경을 보는 일이 아닙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그 안의 삶’을 이해하고, 느끼는 것.
고성은 그걸 가르쳐주는 조용한 스승 같은 곳입니다.

언젠가 이 철책이 사라지고, 이 길이 다시 이어질 날이 오기를 바라며—
오늘 나는, 고성에서 분단을 마주했고, 사람을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