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은 지도 위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한 우리 땅입니다. 이번에는 철책 너머에도 사람이 산다는 주제로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만난 분단과 삶의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평화로운 해안도시엔, 끝나지 않은 전쟁의 상처가 여전히 일상을 감싸고 있습니다.
분단의 현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살아내는 마을, 고성으로 떠나는 조용한 여행을 시작합니다.
철책과 바다가 공존하는 땅 – 고성의 지리적 경계
강원도 고성은 대한민국 최북단, 동해안 끝자락에 자리한 마을입니다.
북한과의 접경지대인 이곳은 ‘DMZ(비무장지대)’와 맞닿아 있어, 누구보다 분단의 현실을 가까이에서 체감하는 곳이기도 하죠.
‘통일전망대’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이곳의 정체성을 설명합니다.
여기선 맑은 날이면 망원경 없이도 북측 마을과 금강산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옵니다. 같은 하늘 아래, 고작 몇 킬로미터 너머에 누군가는 여전히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경계는 철조망 하나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 철책은 육안으로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길게 이어집니다.
바다 위로 햇살이 부서지고, 철책 너머로 갈매기들이 날아드는 풍경은 어딘가 모르게 이질적입니다.
분단은 흔히 멀리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곳 고성에서는 ‘일상 그 자체’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철책이야말로 고성 사람들의 삶을 지켜주는 동시에 막아서는 장벽입니다.
그리고 그 안쪽에는 여전히 웃고, 숨 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통일전망대에서 마주한 ‘그 너머의 풍경’
고성 통일전망대는 군사보호구역에 위치해 있어, 민간인 출입을 위해 신분증 확인과 출입증 발급이 필요합니다.
이 절차를 거치고 전망대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동해와 그 위를 따라 이어진 철책선입니다.
전망대의 관람 공간에서는 북측 지역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망원경을 통해 보면, 북한의 해안 마을과 산맥, 군사 초소까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깝고도 먼 그곳을 바라보는 순간, 이 땅에 흐르는 긴장감과 평화에 대한 간절함이 교차합니다.
전망대 내부에는 분단의 역사, 6.25 전쟁, 이산가족의 삶과 관련된 전시물도 함께 구성되어 있어
단순한 풍경 감상이 아닌 ‘생각하는 장소’로 작동합니다.
그곳에서 만난 한 노인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저기 보이는 마을이 내가 태어난 곳이야. 지금은 갈 수 없어도, 매일 바라본다네.”
그 말 한마디에, 고성 통일전망대는 단순한 관람지가 아닌, 삶과 기억이 이어지는 장소로 느껴졌습니다.
철책 안쪽의 사람들 – 고성 주민들의 삶
고성에 사는 주민들에게 분단은 거대한 이념보다도, 일상의 일부입니다.
모든 출입이 통제되는 민간인통제구역 안에서의 삶은 타 지역과는 많이 다릅니다.
해 뜨면 초소에서 마을을 순찰하고, 밤이 되면 출입이 제한되는 곳. 그것이 그들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분단을 두려움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대신 그것을 ‘살아내야 하는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도 소박한 일상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어촌 마을에선 여전히 새벽이면 배가 떠나고, 저녁이면 잡은 생선으로 식탁이 차려집니다.
농부는 밭에서 농사를 짓고, 아이들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찹니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여긴 철책 1km 안쪽입니다.
그들에게 ‘통일’은 이상보다는 ‘가족과 밥을 함께 먹을 수 있는 날’을 의미합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말해주던 북쪽 이야기, 이름도 모르는 친척의 사진.
그리움은 세대를 이어 조용히 내려오고, 삶은 그 그리움을 끌어안고 계속됩니다.
분단의 상처는 이곳에도 분명히 있지만, 그 안엔 따뜻함도 존재합니다.
고성 주민들의 눈빛과 말투, 그리고 땅을 일구는 손길 속엔
어쩌면 ‘진짜 평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힌트가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마무리하며 – ‘분단의 풍경’에서 ‘삶의 이야기’로
고성 통일전망대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닙니다.
이곳은 분단의 실체를 마주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장소입니다.
철책 너머에도 사람이 살고, 그들도 우리와 같은 바람을 품고 있다는 사실.
그 단순한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여행은 어쩌면 그저 풍경을 보는 일이 아닙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그 안의 삶’을 이해하고, 느끼는 것.
고성은 그걸 가르쳐주는 조용한 스승 같은 곳입니다.
언젠가 이 철책이 사라지고, 이 길이 다시 이어질 날이 오기를 바라며—
오늘 나는, 고성에서 분단을 마주했고, 사람을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