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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지닌 이야기, 창포꽃이 피었다

by 준미니 2025. 5. 22.

이야기가 피어나는 바닷가 마을

파도가 지닌 이야기, 창포꽃이 피었다

영덕 창포마을에서 만나는 바다, 전설, 그리고 사람들을 소개한다.


경북 영덕, 바다를 품은 고요한 작은 마을 ‘창포’.
이름부터 향기로운 이곳엔 오래된 설화와 창포꽃, 그리고 바닷마을의 삶이 얽혀 있다.
전설처럼 흐르는 이야기를 따라 걸으면, 마치 한 편의 옛이야기 속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파도가 지닌 이야기, 창포꽃이 피었다
파도가 지닌 이야기, 창포꽃이 피었다

 

창포마을, 이름부터 전설인 곳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창포리는
바닷가와 인접한 작은 어촌 마을이다.
‘창포’라는 이름만 들어도 어딘가 특별한 느낌이 드는데,
이 이름은 실제로 옛 전설과 꽃에서 유래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창포꽃과 용왕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전한다.
오래전, 마을 앞바다에 큰 용이 살았는데, 가뭄이나 재해가 있을 때마다
용왕이 마을 사람들을 도왔다고 한다.
한 해, 가뭄이 극심했던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용왕에게 간절히 비를 기원하자
그날 밤, 바다 위에 창포꽃이 가득 피어올랐고 이튿날 비가 내렸다는 것이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그 자리에 창포를 심고 바다를 신성한 존재로 여겼다.

실제로 이 마을 주변은 지금도 5월에서 6월이면 창포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바닷가를 따라 이어지는 작은 둑길을 걸으면,
푸른 파도와 보랏빛 창포꽃이 어우러지는 풍경이 펼쳐진다.

‘창포’라는 단어에는 단순한 꽃의 의미만이 아닌,
이 마을이 품은 기억과 신앙, 자연에 대한 경외가 담겨 있는 것이다.

 

바다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


창포마을은 전형적인 어촌 공동체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갯마을 특유의 낮은 집들과, 고깃배가 드나드는 작은 선착장,
그리고 바닷바람에 말라가는 어구들이 골목마다 걸려 있다.
조용하지만 단단한 삶의 흔적이 마을 전체에 배어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대대로 소금, 멸치, 미역, 해산물을 채취하며 살아왔다.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며 살아온 그들의 삶은
도시의 빠른 시간감각과는 전혀 다른, 느리지만 깊은 리듬을 갖는다.

지금도 새벽이면 어부들은 바다로 나가고,
점심 무렵엔 포구에 고깃배가 들어오고,
저녁엔 바닷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노인들이 모인다.

마을 어귀엔 마을 어르신들이 지켜온 작은 용왕당도 있다.
이곳에선 매년 마을 제사를 지내며, 바다의 평화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마을은 예전보다 조용해졌지만,
그 조용함 속엔 오래된 삶의 방식이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

이런 마을의 풍경은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있는 삶의 리듬과 공동체의 기억이라 할 수 있다.

 

창포꽃길을 따라 걷는 마을 기행


창포마을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걷는 것이다.
자동차로는 스쳐 지나갈 수밖에 없는 작은 골목과 숨은 풍경들이
걸음을 멈추는 순간 드러난다.

특히 창포꽃이 피는 철이면, 마을은 완전히 다른 풍경으로 변한다.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꽃들, 그 너머로 반짝이는 파도,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어선의 모터 소리는
‘아무 일도 없지만 모든 것이 충분한 하루’를 만들어준다.

창포마을의 꽃길은 단순한 관광 코스가 아니라
이 마을의 역사와 전설,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따라가는 문학적 길이다.
길을 걷다 보면 곳곳에 세워진 작은 이야기판이나
마을 주민들이 손수 꾸민 쉼터가 눈에 띈다.

또한 이곳에는 ‘창포 설화길’이라는 명칭으로 조성된
짧은 테마길도 있어, 가족 단위 방문자나
조용한 여행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특히 일몰 무렵, 해가 지는 바닷가에서 보는 창포꽃밭의 실루엣은
그 어떤 인위적인 조명이나 장식보다 아름답다.
여기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
전설이 현실과 만나는 감성적인 순간이 존재한다.

 

마무리하며 – 설화와 현실이 만나는 마을
영덕 창포마을은 화려하진 않지만,
그 자체로 깊은 이야기와 매력을 품고 있는 공간이다.
오래된 설화가 아직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창포꽃은 계절마다 그 이야기를 기억하듯 피어난다.

파도 소리와 꽃의 향, 마을 사람들의 느린 삶,
그리고 전설의 흔적이 뒤섞인 이 마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살아있는 이야기책 같다.

어떤 여행지는 시간을 소비하는 곳이지만,
창포마을은 시간을 되돌려 주는 곳이다.
잊고 지낸 감정, 천천히 걷는 호흡, 오래된 이야기의 소중함을
조용히 되새기고 싶은 이들에게
창포마을은 그저 ‘좋은 곳’이 아니라,
한 편의 시처럼 다가오는 장소가 되어줄 것이다.